인지행동치료 상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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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 이성직선생님
심리상담을 대학원에서 전공하고,심리상담사를 직업으로 갖고 일을 하면서도, 막상 나 스스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나에게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심리치료 이론들을 배웠고, 심리상담사로서이러한 이론들을 적용하여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도, 막상 나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 할 수가 없었다. 2년 반 동안 교육분석을 받으며 어린 시절의 아픔들과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충분히 해소하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정도로 행복하지 않았고,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불행감이었다면, 나는 상담을 받을 생각을 하지않고, 그냥 그렇게 견디며 살아갔을 것 같다. 그런데, ‘더 이상 이렇게는 살수 없겠다.’ 라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살아지’는 것 조차 버겁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혼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인가 싶어 지인을 통해 부부상담을잘 하신다는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에 계시는 이성직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고, 첫 상담을 가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부부상담’을기대하고 갔던 것이어서, 선생님을 통해 CBT(인지행동치료)를 접하게 되고, CBT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고, 앞으로 심리상담사로서 CBT 기법에 몰두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못했었다. 첫 회기에서 주저리 주저리 두서없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한 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행복하지가 않아요. 그 긴 시간을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심리상담 공부도 했는데, 그래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저는 근본적으로 행복해질 수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 때 선생님께서 첫 회기를 정리하며 해주신 딱 한 문장이 나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마음에 박혀있는데, 나에게는 한줄기 빛 같았다. “당연히행복해질 수 있어요.” 선생님의 확신에 담긴 이 말 한마디가 선생님과의 상담을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믿어보기로 했다. 선생님의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 그리고 나의 절박한 상황이 맞물려 그 말을 믿고 상담을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선생님과 본격적으로 CBT 상담을하게 되었다. 상담심리를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에 CBT 기법에대해서 배웠었지만, 이론으로 배울 때는 이 기법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부정적인 기분이 올라올 때마다 시간, 상황/사건, 그때 들었던 자동사고, 기분과강도를 쓴다는 것이 기계적이고 유치하다고 느껴졌었다. 이 방법이 심리적인 문제를 해소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일거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 때 배우고 난 후로는 내가 상담자로서 쓸 일도 없고, 당연히 내담자로서도 받아 보지도 않을, 나와는 관계가 없는 기법이라고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첫 회기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을 주신 덕분에, 선생님을 믿고 CBT 기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우선, 선생님께서주신 3칸 사고기록지를 일주일 동안 가지고 다니며, 부정적인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그 당시 상황/사건, 그 때 자동적으로들었던 생각들, 그때의 기분, 강도를 써갔고, 동시에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Feeling Good (저자: David D. Burns)’라는 책을 함께 읽었다. (이 책은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CBT 기법을 적용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 속에는 10가지 인지왜곡이 상세하게 소개되어있다. 내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왔을 때 떠오른 생각이 어떤 인지왜곡과 관련이 되어있는지 바로 연결을 시키기 위해서는 10가지 인지 왜곡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시험을 본다고 생각하고, 이 10가지 인지왜곡을 아주 자세하게, 깊이 있게 예시까지 달달 외웠다. 10가지를 자다가도 술술 이야기할수 있을 정도로 외웠다. 그리고 나서는 사고기록지를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든 생각들이 어떤 인지왜곡과관련이 있는지도 함께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를 사고기록지를 쓰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 보니, 내가 거의 매일 같이 마주하는 부정적인감정과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핵심 사고들이 커다란 인지 왜곡 세 가지에서 비롯되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0가지 중에서 다른 것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세가지 만큼은거의 매일 같이 매 순간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지왜곡들이었고, 이 인지왜곡들로 인해 아무 의미없는 중립적인 사건들 조차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부정적인 감정들을 갖게 된 것이었다.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 자체가 나를 힘들게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 자체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했었는데, 사건 자체도, 나 자체도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안에 있었던 인지 왜곡들이 문제였다. 사고기록지작성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을 직접 종이에 펜을 들고 작성을 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니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이것을 종이에 작성하고, 쓴 것을 바라보고, 선생님과 일주일에한번씩 상담을 하며 말로 풀어내기 시작하니, 제 3자 입장에서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신기하게 조금씩, (하루아침에는 아니다), 인지 왜곡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사고기록지 작성은 유치하지 않았다.
3칸사고기록지 작성이 조금 익숙해 지기 시작하자, 선생님께서는 7칸사고기록지로 숙제를 바꿔주셨다. 7칸 사고기록지에는 지지하는 증거, 반대하는증거, 적응적 사고, 이것을 다 쓴 후의 감정, 이렇게 4칸이 더 추가가 되어있다.3칸 사고기록지도 쓰는 시간이 은근히 많이 걸렸는데, 7칸 사고기록지는 더 시간이 많이걸렸다. 한가지 사건에서 올라온 감정에 대한 것을 쓰는 데만해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지지하는 증거와 반대하는 증거, 적응적 사고를 써나가는 과정은 나와의또 다른 싸움이었다. 나의 부정적인 사고를 지지하는 증거는 자동적으로 많이 떠올랐지만, 그걸 반대하는 증거를 찾아내서, 나의 부정적인 사고를 적응적 사고로대처하려니 기존의 나의 생각들과 내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시간과노력을 들여 이것을 써 내려가고, 이것을 선생님과 상담에서 나누면서 어느새 새로운 생각들이 서서히 내안에서 자리잡아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뿌듯함과 작은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자동적으로 진행되던 사고들이 얼마나 왜곡되었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 내가 마주치는 현실의 상황들, 내 자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고들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혼자 사고기록지에 쓰면서도 긴가 민가 했던 나의 왜곡된 사고들을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논박하며 확실히 깨버리는것, 추가로 선생님과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나의 배경, 어린시절의 이야기, 묻어두었던 아픔들을 함께 꺼내 이야기하며 감정의 정화를 하는 것, 이러한 모든 과정들이 나를 조금씩 나아지게 해주었다. 스스로의 삶을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고, 조금씩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싶은 점은 CBT는 의지가 필요한 활동이다. 3칸 사고기록지도, 7칸 사고기록지도 일주일 동안 써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시간과 노력을 분명히 들여야 하는 일이다. ‘시간이 나면 해야지’, ‘하고싶을 때 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하면 중간에 포기 하기가 쉽다. 생각보다귀찮고, 힘들고, 하기 싫다. 이것을 해야 내가 낫는다, 나아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의지를 가지고해야 지속할 수 있는 과제이다. 그러나 이것을 했을 때, 생각지도못한 효과를 보게 된다. ‘행복해 질 수 있다’. CBT 상담을받은 지 4개월이 되었는데, 지금 내가 ‘완전히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오고, 아직도 인지 왜곡들을 가지고있고, 아직도 사건들을 마주할 때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들을 한다.하지만, 예전보다는 그러한 생각들을 빠르게 제3자모드로 전환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빠르게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그래서, 예전보다는 조금은 더 행복에 가까워진 것 같다.
정리하자면, CBT는 일주일에 한번 상담실에 가서 이야기만 하다 오는 심리치료 보다는 번거롭고, 힘들다. 일주일 동안 과제를 하는 것은 나와의 또 다른 싸움이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CBT는 한 순간에 나의 삶을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꾸는 마술도 아니다. 서서히조금씩 인지 왜곡이 깨지는 과정을 거치며, 이것은 직선의 과정도 아니고, 진행되었다가 다시 되돌아갔다가 하는 과정을 겪기도 하다. 단 몇주 안에 끝나는 일이 아닌 삶 속에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마치 몸의 근육을 키우기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운동을 그만두면 다시 근육이 없어지는 것처럼 끊임없이쉬지 않고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다. 한 순간에 마법처럼 나아지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과정이지만, 분명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치료기법이라는확신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심리치료사로서 이 기법을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현재 심리적인 문제로 나처럼 많이 힘들고괴롭다면, 믿고 한번 시도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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